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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와의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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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진(구 표갤러리 큐레이터) : 안녕하세요, 선생님 오늘 이렇게 밖으로 나오니 햇빛도 좋고 바람도 따뜻하고 완연한 봄이네요. 홍대 앞 작업실에서 이곳 마석으로 이사하신 지 얼마 안되었다고 들었는데, 어떠세요?

김유준(작가) : 오늘 멀리 오시느라 수고하셨어요. 이사한 지 두 주쯤 되었나..그동안 작업실 구하고 정리하느라 무척 바쁘게 지냈어요. 이제 한시름 덜었으니 그동안 못했던 작업에 몰두해야죠.

: 늘 작업 생각뿐이시네요.(웃음) 선생님, 하루에 몇 시간이나 작업을 하세요?

: 저는 매일 10시에 출근을 해서 밤 10시에 마칩니다. 직장 다니는 사람들처럼 매일 일정한 시간에 출근을 해서 작업을 하죠. 밤에 하는 작업을 생활의 리듬을 깨기 때문에 삼가는 편이예요.

: 그렇군요. 일반적으로 생활 스타일이 작업에도 고스란히 반영이 되는 듯해요. 선생님께서는 작업을 하시기 전에 이미 그림에 대한 모든 계획을 세우고 작업에 임하신다고 하던데요.

: 그래요. 제 경우는 작업을 하면서 즉흥적으로라던가 손 가는 대로라던가 하는 방식이 아니라 그림을 그리기 전에 이미 완성된 작품이 머릿속에 담겨 있어요. 그래서 그것에 맞춰 차례대로 진행을 해나가죠. 물론 조금씩 변하는 부분들도 없지는 않지만요.

: 마치 집을 지을 때 미리 설계도면을 만들어 놓고 그것을 보고 차례차례 진행해 나아가는 것 같네요.
밖을 내다보니까 아름드리 잣나무도 보이고 들판도 보이고 개울도 있고...참 평화로워서 마치 선생님의 작품을 보는 듯하네요. 선생님께서는 현재 시간-기억이라는 제목으로 일련의 작품들을 제작하고 계십니다. 그 안에는 산, 소나무, 솟대, 해, 달, 바위, 물과 같은 자연의 요소들이 선생님 특유의 정형화된 형태로 그려져 있는데요, 여기에 담긴 선생님의 생각은 어떤 것일까요?

: 제 고향은 전라도 광주입니다. 무등산 자락에서 유년시절을 보냈죠. 수많은 나무, 꽃, 열매, 돌들로 가득한 그곳은 제가 마음껏 뛰고 뒹굴며 지내던 곳으로, 매년 대보름 당산제를 지내고 여기저기 전설이 얽혀있는 추억이 어린 장소입니다. 설레임과 모험심으로 가득했던 어린 시절 무등은 저의 미래를 열어주었고 삶에 있어서의 분방한 감정을 체험케 했습니다. 아름드리 소나무, 산허리를 휘어 감고 피어오르는 구름, 유난히도 빛나던 밤하늘의 별들, 바위와 작은 돌들을 어루만지며 흘러가는 눈물… 이 모든 것들로 인한 복잡 미묘한 감정은 그후 저의 삶에 확고하게 각인 되어 불치의 병처럼 따라다녔습니다. 게 그림에는 그런 지나간 시간들의 기억들이 담겨 있는 것이죠.

: 여기 다실(茶室)을 둘러보면 좋은 글들이 적혀져 있는 흰종이들이 책장에 많이 붙어있는데, 참 인상적이네요. 선생님 작품에도 가끔씩 글들이 들어가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 저는 책을 읽다가 좋은 구절이 보이면 꼭 적어놓고 시간이 날 때마다 봅니다. 무소유라던가, 무위자연..이런 것들과 관련된 글이 보이죠? 저는 작업의 내용에 있어서 합리적인 것을 싫어합니다. 사람들은 이성의 잣대로 자연을 해석하고 또 우리가 모든 자연의 법칙을 파악했다고 자랑합니다. 자연의 일부였던 인간이 이제 주인임을 자처하면서 자연을 인간화하고 있는 것이죠. 하지만 그렇게 해서 나아진 것이 어디 있습니까? 저는 예전 자연과 더불어 살아갔던 과거의 그 시간이 그립습니다. 그래서 글을 읽고 사색을 하며 그리고 작업을 통해서 자연을 거스르지 않는, 삶의 순리에 따르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습니다. 또 그렇게 함으로써 사람들이 제 그림 안에서 어떤 따뜻함과 희망으로 행복감을 느낄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죠.

: 선생님의 작품이 넉넉하고 편안하게 느껴지는 것은 이처럼 아름다웠던 지난날의 추억과 마음을 다스리는 생활이 작품 안에 고스란히 반영되기 때문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그리고 제가 선생님의 작업과정을 살펴보았는데요, 그 안에 어떤 공통적인 순서가 있는 것처럼 보이거든요?

: 제 그림에 전경, 중경, 후경이 있다면, 후경부터 작업에 들어가요. 작업의 가장 첫 단계는 실제 풍경을 사진으로 담고 우선 사진에서 그림을 한 번 그려요. 적당히 트리밍을 하고 구도를 잡은 뒤에 스케치에 들어가죠. 구도를 잡고 정확한 위치에 사물을 배치하고 난 뒤 채색에 들어가는데, 가장 뒤에 위치한 것부터 칠해나가는 것이 제 그림의 원칙입니다.

: 선생님 작품의 눈에 띄는 특징 중 하나가 두터운 마티에르인데요, 어떤 방법을 사용해서 표현하는 건가요?

: 물감은 아크릴을 쓰고요, 거기에 접착제 역할을 하는 바인더와 금강사를 혼합해서 사용합니다. 기름기가 없어서 생각보다 마르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아요. 저는 작업할 때 맨 처음 캔바스 바닥처리를 하는데 많은 시간을 씁니다. 물감칠을 하고 부분적으로 마띠에르 효과를 주고 다시 그 위에 물감을 덧칠해서 마치 회벽처럼 두텁게 만들죠.

: 자연을 주제로 삼아 작업을 하는 많은 작가분들이 아크릴과 금강사를 사용하시는데요, 이는 기름기가 배제된 자연스러운 느낌으로 그러한 주제와 잘 부합되기 때문이 아닌가 합니다. 하지만 같은 재료임에도 불구하고 작가에 따라서 다른 효과와 독특한 느낌을 가지는데요, 선생님 작품은 자연스러우면서 부드럽고 포근한 느낌이 우세한 것 같습니다. 그리고, 작품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마띠에르와 함께 군데군데 빗질한 듯한 표현이 보이거든요?

: 빗질한 듯하다라는 표현이 맞습니다.(웃음) 실제 쇠나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진 빗을 잘라서 물감이 마르기 전 부분적으로 긁어 표현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그 아래 채색이 자연스럽게 드러나 화면 깊이를 더해주고, 또 숨통을 트여주는 역할을 하거든요.

: 제가 보기에는 마치 바람결 같기도 한데요, 작은 부분이지만 그런 것들이 화면에 잔잔한 재미를 더하는 것 같습니다.
오늘 좋은 작품들도 많이 보았고 또 선생님과 함께 작품에 대한 얘기도 함께 나누었는데, 마지막으로 몇 마디로 요약할 수 있는 얘기는 아니겠지만 선생님의 예술관을 정리해주시겠어요?

: 저는 오래 된 나무에서 경외심을 느끼고, 산자락을 휘감은 구름에서 신령스러움을 느꼈던 사람들, 돌과 나무를 세우고 거기에 인간의 염원을 갈구하였던 사람들, 이 모두가 예술가가 아닐까란 생각을 합니다. 생활 속의 모든 것이 예술품이었던 그런 시절 예술가라는 직업은 그리 의미가 없었을 것입니다. 저는 자연 안에서 살아가던 사람들의 원초적이고 본능적인 에술가적 사고가 반영된 그림을 그림으로써 저마다 간직하고 있는 창조적인 능력에 호소할 수 있는 작업을 하고 싶습니다.


2001년 3월 / 정리 : 한희진(구 표갤러리 큐레이터)